책장

포기하고 싶을 때 근처 모텔로 가세요

rayeyoo 2023. 1. 16.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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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rayeyoo의 책장입니다.

반복된 일상 속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근처 모텔로 빨리 가세요.

김태선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빌려 임승유의 시집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에 수록된 시「모텔」을 시작으로 문학의 기쁨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물이 말로 이행하는 순간


찾아간 모텔은 초입에 있고 예상보다 모텔은 더 있어서 모텔은 모텔을 끌고 들어간다.

모텔은 모텔을 따라간다. 모텔은 모텔을 떠올린다. 모텔은 중요한 지점이 있다. 그 지점에서 망설인다. 잠깐 여기 있으라 하고 먼저 간다. 구름을 생각하고 달걀을 생각하고 환한 날개를 생각하다가

모텔은 놓친다 모텔을 의심한다.

모텔은 모텔로 어두운 부분을 만들고 어두운 부분에서 잠시 모텔에 가깝다. 입구에서 보다 모텔에 가깝다. 모텔이 모텔을 생략하기로 하면

모텔에 다 왔다.

-4부, 「모텔」

 

 

시에서 전하는 모텔의 모습은 일반 숙박시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닐 거예요. 아래 「문법」 전문을 보면 사물이 말로 이행하는 순간에 대해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눈을 뜨니

풀밭이 펼쳐졌다. 펼쳐지는 풀밭의 속도를 따라잡으려다가 멈춘 것처럼 꽃이 있었다. 예쁘다고 말하면 뭐가 더 있을 것처럼 예뻤다.

뒤로 물러나면 더 많이 보이고 많이 봐서 끝이 보일 때

뭐가 있어?

이불을 끌어다 덮으며 네가 물었고 뭐가 있다고 하면 끝이 안 나는 풀밭이었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안쪽까지 따라오는 풀밭이었다. 빛이 부족해지면 풍경은 생기다 말았다는 듯 풀이 죽었고

그만해

그런 말은 풀을 뜯어내고 남은 말에 가까웠다

-1부,「문법」전문

 

 

눈을 뜨는 일과 함께 풀밭이 펼쳐집니다. 시에서 전하는 풀밭의 모습은 누군가가 본 풍경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죠. 풀밭은 시의 문장이라고 여기고 독자가 시의 문장을 읽으면서 읽히는 속도에 맞춰 문장이 펼쳐집니다. '뒤로 물러나면 더 많이 보이고 많이 봐서 끝이 보일 때'에서 독자는 문장을 읽다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문장 첫 부분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할 때가 있습니다. 비로소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게 되죠.


목표를 재정의하다

「문법」 전문을 통해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하며 「모텔」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모텔을 목표라고 여기기로요.

'모텔은 초입에 있고 예상보다 모텔은 더 있어서 모텔은 모텔을 끌고 들어간다.'에서 목표는 단기적 관점에서는 눈앞에 가까이 있고 장기적 관점에서는 작은 목표들이 떼를 짓고 있지 않나요? 큰 목표가 작은 목표들의 합집합인 것처럼.

'모텔은 모텔을 따라간다. 모텔은 모텔을 떠올린다. 모텔은 중요한 지점이 있다. 그 지점에서 망설인다. 잠깐 여기 있으라 하고 먼저 간다. 구름을 생각하고 달걀을 생각하고 환한 날개를 생각하다가'에서 인간이라는 동물은 어떠한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전 포기를 꼭 한 번씩 마주합니다. 목표는 냉정하게 포기할까라는 고민이 생겼을 때 기다려주지 않고 유유히 시간과 함께 떠나버리곤 합니다.

'모텔은 놓친다 모텔을 의심한다.' 목표를 놓치고 결국 인간은 괜한 자존심이 생기죠. 애써 부정합니다. 설정한 목표를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며 포기를 합니다. '모텔은 모텔로 어두운 부분을 만들고 어두운 부분에서 잠시 모텔에 가깝다. 입구에서 보다 모텔에 가깝다. 모텔이 모텔을 생략하기로 하면//모텔에 다 왔다.' 아이러니하게 어떤 인간은 누군가 포기했던 목표를 목표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반복된 일상이라 생각하며 삶을 지속했더니 목표에 가까워지고 목표를 달성까지 합니다.


반복은 미묘한 차이를 이룬다


자작나무를 심었다. 자작나무 옆에 자작나무를 심고 하루 종일 심다가 해가 넘어가면 다음 날 와서 심었다. 때리는 것 같았다. 맞아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된다고 그만 집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앉아서 울다가

자작나무를 심기 시작한 후에는 자작나무 밖에는 아무도 없어서 누운 자작나무를 일으켜 세워가며 자작나무를 더 심었다. 자작나무를 다 심을 수 있을 때까지는 세상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자꾸 누우려는 언덕을 일으켜 세우다 보면 자작나무가 자작나무를 앞서가는데

그때부터 먼 곳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2부,「새」

 

 

나무를 심는 일은 인간이 반복하는 일로 읽힙니다. 인간은 어떠한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죠. "이러면 안 된다고 그만 집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앉아서 울다가"와 같은 말처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작나무를 심기 시작한 후에는 자작나무 밖에는 아무도 없어서"라는 말처럼, 일 외의 것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그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자작나무를 옆에 자작나무를 심고"에서 사실, 밖으로는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 깊이 보면 매번의 행동마다 미묘한 차이를 이루어냅니다. 자작나무를 심은 다음에 다시 심는 자작나무는 다른 자작나무이고, 심는 위치 역시 "옆에"라는 다른 위치입니다. 이렇게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여겨지던 일은 조금씩 어딘가 다른 곳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을 이루어내지 않나요?

하나였던 것이 여럿이 되어 관계를 이루고, 관계는 이것저것 다른 일들을 일어나게 합니다. 반복과 함께 생성되는 미묘한 차이는 지속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죠.

"시인은 계속해서 시를 쓰는 일과 함께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려 한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 한다. 그렇게 반복과 함께 이루어지는 말하기는 우리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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